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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녀교육

    ko-KRJanuary 30, 2011
    What was the main topic of the podcast episode?
    Summarise the key points discussed in the episode?
    Were there any notable quotes or insights from the speakers?
    Which popular books were mentioned in this episode?
    Were there any points particularly controversial or thought-provoking discussed in the episode?
    Were any current events or trending topics addressed in the episode?

    About this Episode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Recent Episodes from 사무엘상 – 조성훈 목회자의 설교와 글

    은퇴하면서 드리는 말씀

    은퇴하면서 드리는 말씀
    제목: 은퇴하면서 드리는 말씀 본문: 사무엘상 12장 1-5절 설교자: 조성훈 은퇴를 생각하면서 많은 생각 중에 사무엘의 은퇴식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아이 때부터 여호와의 전에 나가서 일평생 하나님을 섬긴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사무엘이 다스리는 것을 싫어해서 왕을 달라 요구했고 결국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백성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린 것이라 하시고 사울 왕을 세우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사무엘이 백성들을 세워놓고 은퇴식을 하는 모습입니다. 저 역시 긴 시간 목회를 했습니다. 35년 정도 됩니다. 사무엘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성도들에게 빌리고 갚지 않은 것이 있는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교회의 헌금이나 물질을 취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어떤 분은 은퇴하고 나니 정말 힘들다고 제게 절대 은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큰 문제없이 이렇게 은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벅찬 즐거움이 있었고 때로는 서글픈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표를 제출한 적도 많았습니다. 정말 사역을 못하겠다고 하나님께 사표를 내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을 하시든지 실질적으로 보여주시든지 하지 않으면 사역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집회를 통해 들려주신 찬양이 “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였습니다. 좋을 때도 있었고 안 좋을 때도 있었습니다. 참 즐거웠을 때는 정말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싶었던 성도들이 세월이 가면서 자라가는 것을 볼 때 참 기뻤습니다. 반대로 시간이 갈수록 열기가 식어지고 점점 겉돌면서 힘을 잃어가는 성도를 보았을 때 슬펐습니다. 교회에 대한 애착을 가진 성도들이 많아 참 감사가 됩니다. 내 교회,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자신을 이곳에 투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를 위해서 희생을 하고 물질적으로 희생하셨습니다. 성도들이 각자 사는 게 힘들어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35년 동안 목회하면서 헌금에 대한 설교를 몇 번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많은 희생을 하셨고 제가 처음 유평교회에 왔을 때 비가 새는 예배당이었지만 그것을 헐고 예배당을 지었고 또 지금의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다들 어려웠지만 사랑과 희생, 인내로 오늘의 유평교회를 이뤘습니다. 목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하게 적용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에게 잘한 사람들에게 잘 하는 것은 쉽지만 저를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에게 잘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정하게 적용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정하게 적용할 때 참 좋아합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본다고 생각하여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자신에게 적용되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젊은 일꾼들이 목회를 할 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공정하게 적용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용될 때는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주님 안에서 만나서 결혼하면 되지 조건이 무슨 문제가 되나 쉽게 말하지만 자신의 자녀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자신에게도 공정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선 사단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는 이 때에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때 목자들은 고민하고 연구해서 긴 시간을 내다보고 교회를 이끌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동안 성도들이 이해되지 않아도 목회자의 뜻을 따라 주었기에 오늘날의 유평교회가 있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설문조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설문지를 받고나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다양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을 통해 가르치신 대로 교회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우리의 육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목회를 35년 했어도 기도하는 것보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솔직히 더 편하고 좋습니다. 목회자들도 매일 사단과의 싸움에서 싸우고 승리하면서 여러분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어도 오랜 시간을 순종해온 여러분들 덕분에 오늘의 유평교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해보지 않은 성경공부를 하자고 했을 때 다들 따라와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자세로 우리 앞에 세워진 목회자를 따라간다면 우리 교회는 틀림없이 더욱 영적으로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더욱 주님을 닮아가고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고 하셨고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 것이고 그 때 주님께서 많은 이들을 교회로 불러주실 것입니다. 우리끼리 좋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고 각자가 지체가 되어 자라가는 교회이기 때문에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은사에 따라 섬깁니다. 유평교회에 오랫동안 참석했는데 내가 일할 자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성도들이 왔지만 교회에 사랑이 없다고 떠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이 많다고 해서 왔다는 사람은 교회에 사랑을 베풀려고 온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으려고 온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러 온 사람은 만족이 없습니다. 그 신앙은 점점 죽어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하는 신앙은 자라갈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의 신앙은 죽어갈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교회에 참석할 때 자신이 할 일이 보일 것입니다. 이 교회에 부족한 면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전도가 약하다고 느껴진다면 주님께서 그 마음에 전도에 힘쓰도록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구제가 약하다고 느껴진다면, 성도 양육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면 주님께서 그런 부담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부담감에 따라 일하면 됩니다.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 중에는 금세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의 부족한 면이 보이고 주님께서 부담을 주셔서 그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라지와 같아서 그런 성도들을 처음 온 사람이 주인처럼 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도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영적인 일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계속해서 제시하는 경우도 그러한 가라지입니다. 그는 늘 감사보다는 불평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 것은 진짜 알곡들이 하는 일입니다. 저 역시 목회를 하면서 이상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유평교회에 본토인이 아니기에 교회를 팔아먹고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섬기는 일에서 낙오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직장 생활이 참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저는 말합니다. 그럼 쉬울 줄 알았습니까? 탄광에서 하얀 옷을 입고 일하는 것과 같습니다. 악한 세상 속에서, 가라지가 있는 교회 안에서 믿음을 지키고 교회를 섬기며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번도 쉬운 일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젊은 일꾼들을 외국에 보내 공부시킬 때 유평교회 성도들은 한분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외부 교회에서 전화가 와서 문제를 삼았습니다. 참 우스운 일입니다. 과거에 교회가 작을 때도 어려웠고 교회를 새로 지었을 때 역시 힘들었습니다. 젊은 일꾼들을 미국에 보내서 공부시킨다고 헌금을 모으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세워지자 일꾼들이 많아서 먹여 살리려니 또 힘들었고, 이제는 두 사람이 오늘 은퇴를 하지만 교회 뒤에 땅을 사서 또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사기꾼들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성도들과 교회를 위해, 그리고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계속 애쓸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회자들의 뜻에 따라 계속해서 헌신해주시기 바랍니다. 집회 참석하기에 힘쓰시고 가르침에 순종하십시오. 오늘날 목회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일꾼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고 기도해주고 물질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또한 일꾼들은 그것으로 더욱 성도들을 가르치고 섬기는 일에 힘쓰는 것, 이것이 성경적인 교회의 원리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영적인 보호를 받는 중요한 곳이기에 이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손자들이 영적인 양식을 공급받고 생활해야 할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니 성경적이고 영적인 교회로 만들어가는 일에 모두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 자녀, 손자들까지 영적으로 보호받고 자랄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자신을 교회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지원과 인내와 목회자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감사함으로 받으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은퇴하지만 계속해서 여러분과 함께 제 남은 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함께 주님을 섬기고 함께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처음 목회 할 때 목회의 경험도 없고 어떻게 성도를 돌봐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성도들이 함께 인내하시고 도와주셔서 오늘의 유평교회가 이뤄진 것입니다. 젊은 목회자들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많이 격려해주시고 감사를 표현하시고 칭찬해주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때때로 책망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이들은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녀교육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녀교육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과의 약속

    하나님과의 약속
    제 목 : 하나님과의 약속 본 문 : 사무엘상 1잘 10절 ~ 18절, 26절 ~ 28절, 2장 21절 설교자 : 조 성 훈 오늘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약속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길 원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약속을 합니다. 또한 사람들과의 약속 뿐 아니라 하나님과도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을 드리겠습니다.” 등의 많은 약속을 합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많은 분들도 하나님과의 많은 약속을 하셨을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한나 역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은 또 다른 표현으로 ‘소원’을 말하는데, 성경에서는 ‘그 소원한 것을 주 앞에 갚으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제가 약속을 가장 잘 안 지킨 대상이 누구일까 생각해보았을 때,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약속은 거의 대부분 지켰기 때문에 신용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은 정말 많이 했지만, 지킨 것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를 만나고 약속을 잊게 되고,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제가 하나님과 약속한 것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하나님과 수많은 약속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미안한 마음도 없이, 당연한 것처럼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약속은 대부분 잘 지킵니다. 자기 체면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약속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한나의 믿음 본문 말씀에 나오는 ‘한나’라는 여인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녀에게 자식이 없는 것이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자녀가 없다는 것이 굉장한 고통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한나는 그의 남편의 다른 아내가 아이를 가지고 있었고, 늘 그녀를 격동시켰기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굉장한 푸대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아들을 주시면, 제가 다시 그 아이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번에 복권이 담청 되면, 얼마를 드리겠습니다.” 복권이 담청되기 전에, 또, 아이를 낳기 전에는 누구든지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약속의 조건이 이루어졌을 때, 지켜야할 것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아들을 주시면,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참 갈등이 생기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한나가 그 아이를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삼상 1:27-28) 이러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상황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약속을 할 때와 그것이 이루어지고 난 후의 마음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약속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저도 그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얼마나 큰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굉장히 큰 믿음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바친 그녀의 믿음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자식을 둔 형제, 자매님들은 그것이 어떤 믿음인지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평생에 단 한 번 어렵게 난 아들을 하나님의 성전에 두고 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 약속을 지켰고, 그 후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더 많은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그녀의 아들 사무엘이 주 앞에서 잘 자라나 큰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된 것과, 두 번째로는, 사무엘을 드림으로 다른 자식들을 더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약속을 하는 경우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 하나님과 약속을 합니까? 어떤 사람은 사업을 시작할 때 하나님과 약속을 합니다.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시면, 그 중에 얼마를 하나님께 꼭 드리겠다고 하면서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막상 사업이 잘 돼서 하나님께 드리는 돈이 천만 원이 넘으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은 것들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제일 슬펐던 점은 제 자신이 가장 약속을 안 지키는 대상이 바로 하나님이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하면, 그 사업이 주님을 위한 사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조건을 걸고, 그것을 해주시면,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는, 그 약속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병원에서 하나님과 약속을 합니다. 저도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병이 낫고 밖에 나가게 되면, 정말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의사가 여러분에게 암 판정을 하면, 여러분은 아마도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제 삶을 연장시켜주시면, 다시는 예전과 같이 살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 때는 정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고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나와서 살다 보면, 그러한 하나님과의 약속은 모두 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쉽게 약속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깊게 생각해보면, 하나님과 쉽게 약속을 해서는 안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학교를 진학할 때, 하나님과 약속을 합니다. “주님, 제가 이런 대학에 합격하면, 정말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또 직장을 얻을 때는 어떠합니까? 자격증 시험을 볼 때는 어떻습니까? “주님, 제가 이번에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주님, 제가 이번에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면, 정말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조건을 단 기도를 하지만, 막상 취업하게 되고,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게 되면, 그 하나님과의 약속은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려울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서원을 하게 됩니다. “주님, 이 어려움을 이기게 해주시면, 제가 주님 앞에서 이렇게 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어려움을 이기고 나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약속을 하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주님의 일에 정말 열심을 내야지.”, “새해에는 하루에 몇 장씩 성경을 읽어야지” 등의 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얼마 못 가고 그 다짐들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많은 약속을 하고, 쉽게 그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유 왜 우리는 하나님과 쉽게 약속을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첫째,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모르는데 있습니다. 신명기 23장 11절 말씀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서원은 절대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하나님께 약속을 했다면,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전도서 5장 말씀에서는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등의 하나님과의 약속에 관해 반드시 지킬 것과 실수하지 말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평범한 한 가정의 주부입니다. 오랫동안 성경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녀의 삶에서 하나님은 실질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녀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살아계셨던 것입니다. 하나의 인격체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한나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실질적으로 살아있는 하나님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살아계신 인격체로 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한나는 단순한 마음을 가진 주부였지만,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보는 눈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한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고, 둘째로, 한나는 약속을 지킨 후 그녀의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었고,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주셨고, 그녀는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마음의 근심을 떨칠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한 여인의 모습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대단한 믿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또 다른 대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은 예수님을 초청한 한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들이 병에 들려서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께서 그 집에 가시려고 했을 때, 그는 사환을 보내서 “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말씀으로 해주시옵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매우 놀라시면서, 이스라엘 가운데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백부장은 주님에 대한 정말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인격체로서의 주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시지 않고, 말씀만으로 고쳐주시길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한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고, 이제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일까요? 형제, 자매들과의 약속은 잘 지키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은 왜 지키지 않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친구들 간의 약속보다는 도지사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대통령과의 약속은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얼마나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입으로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겠지만, 아마 약속을 가장 쉽게 깰 수 있는 대상이 하나님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상은 누구입니까? 저는 하나님과 얼마나 많은 약속을 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조건을 내건 기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해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이루어지면, 약속을 더 이상 지키지 않았던 적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녀는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11장)처럼, 신앙의 근본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삶의 올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면, 그렇게 쉽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위엄이 있으신 분입니다. 저는 한나의 믿음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속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한 여인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대단한 믿음을 보이는데, 매일 말씀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나는 이러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가? 무엇이 문제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10년, 20년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무엇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진실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인격체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인격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죽은 자처럼 되었습니다. 요한도 주님을 만났을 때, 죽은 자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산 사람이 없고,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앞에서 쉽게 약속을 하고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어려운 일이지 않습니까? 사람과 사이에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마음에 어려움이 되지 않습니까? 반면,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많은 약속을 하시고, 그것들 중에 지키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해서 그렇게 생각할지언정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함으로 복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히 6장)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뜻이 변치 아니하심을 보여주시기 위해 맹세로 보증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며 감사할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와 같지 않으셔서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두고 맹세로 약속하셨습니다. 구약 말씀을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고, 지키시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다윗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을 하시고 지키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한 번 약속을 하시면, 다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하신 약속을 모두 잘 지키셨습니다. 또 앞으로도 틀림없이 지키실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결론 그 동안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한 약속들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한나와 같은 기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사업을 위해, 직장을 위해, 건강을 위해... 등 수없이 많은 경우에 하나님과 약속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 약속을 과연 얼마나 지켰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한나는 평범한 주부였지만, 하나님 앞에 조건적으로 기도를 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심으로 아들을 주시자,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그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녀는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공부를 합니다. 유평 교회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공부를 하고도, 한나와 같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헛된 것입니다. 모든 지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이 옆에 계신 것처럼 모시고 사는 삶이 진실한 신앙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 신앙의 모습을 보인 한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아들과 딸을 주심으로 축복하시지 않았습니까?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한나에게도 갈등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렵게 얻은 첫 아들을 한참 귀여울 젓 땔 때 쯤 성전에 두고 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한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랬을 때 한나는 더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어느 경우에는 손해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 마찬가지로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드리려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때 “네가 네 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을 알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한나의 모습에서 보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녀의 삶에서 아들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말씀은 “나보다 세상을, 가족을, 목숨을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치 않다.”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첫째 자리에 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는 불행하게도 그렇게 하나님을 대하지 못했습니다. 한나도 자기 아들이 중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이 자기 아들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약속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큰 돈을 빌리고 갚겠다고 해놓고서, 갚기로 한 날짜에 멀리 도망을 갔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그렇지는 않습니까? 급해서 하나님께 약속을 해놓고, 나중에 가서는 그런 약속을 했는지도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경외심은 우리의 자세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나의 모습에서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경외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해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을 때, 기뻐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해드렸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욥도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해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기쁘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해드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약속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많은 약속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한 약속을 성실히 지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하나님 대접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그 행동에 나타납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 자신을 돌아보시고, 하나님과 한 약속이 있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있다면, 그것을 실수라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한 소원을 갚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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