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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원경

    Explore " 망원경" with insightful episodes like "[서양사 37회]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갈릴레오 갈릴레이 3부: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모색한 근대인", "[서양사 36회]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갈릴레오 갈릴레이 2부:망원경으로 우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다", "46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4장 자명종", "45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3장 유리거울" and "44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2장 망원경" from podcasts like ""연남책빵", "연남책빵", "연남책빵", "연남책빵" and "연남책빵"" and more!

    Episodes (6)

    [서양사 37회]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갈릴레오 갈릴레이 3부: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모색한 근대인

    [서양사 37회]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갈릴레오 갈릴레이 3부: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모색한 근대인
    1616년 교회가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금서로 지정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신앙과 과학 연구가 모순되는 게 아니며, 다만 과학적 설명과 성경의 내용은 같은 진리를 다르게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교회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46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4장 자명종

    46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4장 자명종
    [독자적인 책수다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4장 자명종이 맞닥뜨린 조선의 시간] 국가가 시계를 만든다는 것은 곧 시간의 측정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 시계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계절 단위의 변화가 시간을 헤아리는 중요한 기준이었던 농업 사회가 더욱 정교한 측시기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7세기 초 북경을 통해 서양식 시계, 곧 자명종이 조선에 전래되었다. 자명종을 본 사람들은 정교한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이 새로운 측시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새로운 측시기는 조선에 어떤 영향을 끼쳤던 것인가? -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4장 자명종이 맞닥뜨린 조선의 시간> '시간과 권력' 중에서

    45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3장 유리거울

    45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3장 유리거울
    [독자적인 책수다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3장 유리거울에 비추어 본 조선] 한반도에서 거울은 청동거울, 곧 동경으로부터 시작했다. 저 고조선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의 17세기 말까지 오로지 청동거울이 거울의 역사였다. 그러다가 아주 빠르면 17세기의 끝, 늦으면 18세기 초반 어느 때부터 유리거울이 사용되었다. 이 글은 바로 한반도에 도입된 이후 유리거울의 역사를 다룬다. 19세기 말까지 조선은 유리거울을 만들 수 없었다. 모든 유리거울은 서구에서 제작된 것을 수입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글은 먼저 조선 시대의 청동거울과 서구의 유리거울 제작에 대해 간단히 살핀 뒤, 유리거울의 수입에 대해 서술하기로 한다. 강명관 교수의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3장 '날마다 보는 거울' 중에서

    44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2장 망원경

    44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2장 망원경
    [독자적인 책수다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2장 망원경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향신료에 끌린 서양의 배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하고, 그곳을 기점으로 삼아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 광동으로, 일본으로 갔을 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나아가 마젤란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았을 때, 남아메리카를 착취하여 금과 은을 실어 날랐을 때 망원경은 없어서는 안 될 기기였다. 나아가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두고 바다에서 육지에서 전쟁을 벌일 때도 당연히 사용되었다. 망원경은 역사를 바꾸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던 것이다. 망원경은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상륙했고 급기야 조선에 전해졌다. 조선에 전해진 망원경은 과연 어떤 역할을 수행했던가? 그 길을 따라가 보자. 강명관 교수의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2장 '세계사를 바꾼 망원경' 중에서

    43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1장 안경

    43회.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1장 안경
    [독자적인 책수다 '강명관과 함께하는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1장 안경, 조선인의 눈을 밝히다] 안경은 18세기 후반 중국과 조선 지식인들의 직접적인 만남을 매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만약 그날(1765년 겨울) 이기성(조선 사신단)이 반정균과 엄성에게 안경을 달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홍대용은 중국 지식인과 사귈 수 없었을 것이고, 조선 후기의 조선과 중국의 지식 교류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우연은 안경으로 얻은 밝은 세상에 열광한 조선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필연이기도 하였다. 안경은 독서인을 자처하는 조선의 사족에게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광명을 찾아준 안경에 환호했다. 안경에 대해 중요한 기록을 남긴 이익의 경우를 보자. 그는 『애체경명』에서 안경을 열렬히 찬양한다. "털끝만 한 것도 자세히 눈에 들어오니 누가 이런 이치를 알아내었을까? 구라파의 사람이로다! 저 구라파 사람이야말로 하늘을 대신해 어진 일을 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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